정신병원 의사들은 환자와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보면 자신의 정신이 흐트러 지는것도 모르는 채 진찰하고 있는 환자와 같은 상태로 정신이 흐려지게 되거나, 환자와 너무 가까워져버려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그 막기 위해서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한달에 한번씩 자신도 정신병원 의사에게서 정신감정을 받거나, 한달에 한번씩 환자를 바꾸는데,
케이펙스에서는 객관성을 잃고 한 환자에게 집착해 가면서 치료를 도우려는 위험한 경계에 서 있는 의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주인공인 프롯은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한다.
거리에서 경찰에게 소환되어 온 프롯을 단순한 정신병자로 바라보던 정신병원 원장 마크는 대화를 해 나가는 동안 그의 해박한 지식과, 도저히 정신병자라고 생각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객관성을 서서히 잃어가게 된다.
사실, 영화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진정한 치료를 위해 프롯에게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 공감하려 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실제 상황에서 그런식으로 환자를 대하게 되면 주변의 동료들에게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 쉬울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상 프룻은 외계인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가 죽었을때의 충격으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게된 안타까운 경우였다만....
인간의 일생에 있어 중요한 타자가 가지는 영향력이란 남아있는 사람의 정신마저도 파괴시킬수 있을만큼 이라는것을 알게 되어 가슴이 찡했다.
영화에서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었는가 싶다.
언뜻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외계인과 가족의 소중함이라니. 하지만 잘 어울린 소재였고, 그래서 감동도 컷다.
영화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정신병원 안으로 프롯이 침투해 들어오면서 변하게 되는 병동 환자들의 관계도 참 흥미로웠다.
복지사에게 먹을것을 함부로 던지면서 자기 멋대로 해오던 부인이 강박증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조증에 시달리던 사람을 병동안의 심리 치료사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조증과 강박증에 시달리던 볼록렌즈를 쓴 환자앞에 파랑새를 날려 보냄으로서 그 환자와 병원 전체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지는것을 보고, 진정한 정신과적 치료는 사람대 사람으로 마음으로 만나,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주 는것이다... 라는 가르침을 받을수 있었다.
한편, 복지사 에게 음식을 던지는 여자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병원의 직원이든, 복지사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 주셨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동사무소 사회복지 공무원이 수급권자로 지정되신 분께 도와드리겠다는 의사를 자꾸 표시하면서 다가가려고 하는데, 수급권자로 지정되신 분께서는 나라가, 복지사가 자신을 거지 취급한다면서 자꾸 복지사를 물리치고, 심지어는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걸레를 빤 물을 머리서부터 뒤집어 씌웠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그 사회복지 공무원 분께서는 그런 수모를 겪으시면서도 자꾸 그분을 찾아뵈어 결국 공적부조를 받게 하셨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지나간 여왕처럼 지내는 환자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작은 부분으로서 등장한 장면이었지만 나에게는 가장 인상깊은 장면 이었던 듯 싶다.
그 순간은 싫은 내색을 했더라도 다시 내일이 되면 또 웃으면서 그 환자분을 찾아가게 될테니까.
자,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나라면 환자가 던져버린 음식을 얼굴에 뒤집어 쓰고.
혹은 수급권자로 지정된 분에게 걸래빤 물 세례를 받고도.
'저사람은 환자니까, 내가 도와야돼!' 라는 강한 사명감 하나로 다가가기가 과연 쉬울것인가.